2018 <그림이 될 수 있는 것> 안소연

그림이 될 수 있는 것

안소연 (미술비평가)



박두리의 최근 작업은 그가 일상에서 오가며 관찰했던 소소한 풍경이나 사물을 자신의 오래된 기억들과 연관시켜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지난해 10월 아트스페이스오(서울)에서 있었던 개인전 《경계의 모양(집합B)》(2018)와 서신갤러리(전주)에서의 개인전 《경계의 모양(집합A)》(2018)는 비슷한 경험을 동일한 제목으로 중첩시켜 놓음으로써 분명하게 하나의 쌍을 이룬 전시였다. 한편, 《경계의 모양(집합A)》가 10월 10일부터 21일까지 열렸으며 《경계의 모양(집합B)》는 10월 18일부터 31일까지 열려 전시 기간도 서로의 경계를 절반 정도 중첩시켜 놓은 셈이 됐다. 특히 《경계의 모양(집합B)》에서는 전주팔복예술공장에 입주하여 전주와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던 중에, 유년시절을 전주에서 보냈던 자신의 기억과 서울생활에 익숙해진 현재의 감정들을 중첩시켜 기억과 감정의 행간을 살피는 회화 및 설치 작업을 보여줬다. 예컨대, <선데이>(2018)와 <불꽃치사량>(2018)처럼 양립할 수 없는 형상들이 공존하는 초현실적 화면이 구성되어 있는가 하면, <Fairy ring>(2018)과 <위로부터 아래로부터>(2018)처럼 익숙한 풍경이지만 근원을 알 수 없는 낯선 장면들이 회화로 제시되어 있기도 했다. 또한 글과 이미지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미완성 1PAGE>(2018) 연작도 신작과 함께 설치돼 있었다.  


일련의 작업에서 엿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줄곧 그림의 대상을 찾고 있다는 강한 인상이었다. 강박적으로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작업의 출발점에서, 박두리는 차츰 ‘무엇이 그림이 될 수 있는지’ 스스로 묻는 탐구의 과정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것 자체가 목적인 것과 그것에 대한 답을 모색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는데, 박두리는 후자에 더 가까운 태도를 가지고 그림이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물음의 답을 쫓는다. 이를테면, 그는 이번 《경계의 모양(집합B)》를 준비하면서 자신이 태어나 살았던 전주에 다시 머물게 된 상황과 여전히 창작과 생계를 위해 타지인 서울에 오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기간 중에 일상에서 발견된 사물과 감정을 긴밀하게 엮는 방법을 그림에서 찾았다. <선데이>의 경우, 길 가 외진 곳에 아무렇게나 핀 듯한 꽃나무들을 배경으로 파란색 천을 씌운 탁자가 있고 그 위로 초현실적인 형상들이 어떤 연쇄를 이루며 낯선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그림에서는, 붓질에 정성을 들인 붉은 꽃과 초록 잎사귀들이 바스러질 듯 허약한 윤곽선으로 대충 그려 넣은 듯한 무채색의 꽃과 나비 혹은 실체를 알 수 없이 흰 색 물감으로 그린 개구리 뼈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또한 자연물과 인공물,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 생성되는 것과 소멸하는 것이 양립하고 있어 마술 같은 기이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처럼, 박두리의 최근 작업은 현실의 풍경이나 사물과 심리적 요인들을 결합시켜 일련의 초현실적 서술체계를 따르면서, 특히 내용과 형식 둘 다를 아우르는 가운데 회화로서의 가능성을 보다 부각시켜 놓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초기작업에서부터 줄곧 “감정”이라는 키워드를 작업에 끌어들인 박두리는, 어느 때부터인가 자연의 풍경이나 사물에 기억이나 감정을 투사시켜 각각의 상이한 시차를 매개하는 특수한 상황에 주목해왔다. 과거에 초현실주의자들이 발견된 오브제를 통해 객관적 우연의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들에 몰두했던 것처럼, 그는 현실의 풍경에 잠재되어 있는 오래된 기억과 감정의 차원들을 회화로 되살리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오래된 시차 및 상이한 시공을 중첩시키기에 적합한 회화의 형식을 살피는 셈이다. 때문에, 그의 회화는 절단된 이미지들이 결합되어 있는 콜라주 같기도 하고, 상징적인 도상들이 즐비한 고전 회화 같기도 하며,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는 삽화 같기도 하다. 특히 그가 작업 초기에 한동안 표현해 왔던 이미지에 대한 수집과 재구성의 방식들이 그러한 예다. 끊어진 육교, 수도꼭지 등 어떤 특수한 상황과 사물을 재현함으로써 그것이 순간적으로 매개하는 과거의 기억들과 그것으로부터 되살아나는 감정들을 표현하고자 했다. 앞에서 언급한 최근 개인전에서 보여준 작업들은, 어쩌면 이러한 초기작업의 관심사들과 꽤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초기에는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되살리는 현실의 매개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을 따랐다면, 최근 작업에서 그는 과거와 현재 혹은 기억과 실재의 시차가 사라지고 중첩되어 있는 마법 같은 상황을 그린 회화의 이미지에 더욱 다가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초기에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단순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했던 것이 도리어 ‘무엇이 그림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회화 연구로 나아가는 틀을 제시한 셈이 됐다. 요컨대, 그는 엄청난 시차를 중첩시킬 하나의 동시적인 이미지로서의 화면을 구축하려 했던 것 같다. 


《경계의 모양(집합B)》와 짝을 이룬 《경계의 모양(집합A)》에서도, 전주와 서울을 오가는 작가의 일상적인 경험이 그림의 소재로 다뤄졌다. 있을 법한 풍경과 사물들은, 시선을 오래 붙들 만큼 강렬하거나 특별하지는 않다. 진부할 정도로 평범한 일상의 장면이지만, 그 진부함 탓에 한참 들여다보면 화면에 가득한 형태의 전형성이 그 익숙함을 낯선 상태로 다시 전환시켜 놓는다. <먼지연못>(2018) 같은 경우, 화면 중앙에 있는 수조 안의 이불이 장소와 상관없이 놓여 있어 상황의 모순을 극대화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연못의 진부함 또한 회화적 표현의 클리셰에 의해 더욱 강조되면서 가공된 현실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한편, 박두리는 최근 작업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회화적인 장면들과 이야기를 중첩시키는 일련의 서사적인 작업을 시도한 바 있다. 그는 지난 해 초 자신의 개인전 《미완성 1PAGE》(2018)에서 글과 그림으로 구성된 28미터 길이의 긴 작업을 “완성”시켰다. 그가 제목에서와 같이 “미완성”이라 부르는 이 작업은, 시작도 끝도 없이 연쇄적인 (비)상관적 서사와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절정도 없고 결론도 없이 모호한 서사와 이미지가 무심하게 연결되어 있는 작업 내부의 상황은, 사실 매우 공허한 동작들만 반복되는 진부한 일상과 닮아 있기도 하다. 그 진부함이 문득문득 일으키는 낯선 감각 때문에, 박두리는 그 미묘한 간극을 회화에 대한 경험에 대입시켜 그럴듯하게 전환시켜 놓는다. 이를테면, 무지개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행위라든가 녹는 형태를 어딘가에 묻어놓는 행위처럼 매우 무모하고 목적 없는 행동들에 대한 과도한 몰입을 통해, 박두리는 그림 그리는 자신의 행위와 그 흔적으로서의 회화에 대한 인식을 그것에 견주어 환기시킨다. 어쩌면 그가 서서와 이미지를 둘 다 “불완전한” 상태로 병치시키는 것도, 그림이 될 수 있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그 가능성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박두리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말할 때 지속적으로 자신의 내밀한 감정에 대해서 언급한다. 특히 과거의 감정들이 주체의 내면에서 어떤 특정할 수 없는 이유로 억압되거나 휘발되어 흔적만 남겨둔 현재의 상황에 주목하여, 그것을 “소외된 감정”이라 부르고 흔적만 남겨놓은 감정들이 현실에서 다시 되살아나는 초현실적인 현상을 그림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는 나와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고 특히 “내면에 침전된 감정들이 다시 튀어 오르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본다”고 했다. 이때, 그는 소외된 감정이 여러 시차를 극복하고 다시 생성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회화적 장면이 완성되는 순간과 그렇게 남겨진 흔적으로서의 회화가 함의하는 여러 맥락들을 살펴왔다. 때문에, 그의 회화는 흔적만 남겨놓은 감정이 되살아나는 상황을 내용으로 담아내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회화를 경험하는 순간이 감정을 매개하는 찰나와 일치하는 조건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것이 아마도 그가 회화로 제시된 화면 뿐 아니라 회화를 전시 공간에 설치하는 맥락과 그것에 대한 개인의 경험을 긴밀하게 조율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결국 작업 초기에 고민했던 회화의 대상을 찾기 위한 물음에서, 그는 최근 작업에 이르면서 ‘무엇이 그림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회화의 본성에 관한 탐구로 이어졌고, 이는 회화를 경험하는 조건으로까지 연결되면서 또 다시 ‘그림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라는 확장된 질문으로 나아가고 있다. 말하자면, 회화의 대상으로 옮겨놓은 장면들은 다시 새롭게 경험되고 재인식되면서 주체 내부에 어떻게 남게 되는가 하는 물음을 내놓는다. 그가 회화에서 담아내고 있는 수많은 (목적 없는) 행위들처럼, 어쩌면 그림 그리는 행위가 남겨 놓은 것을 다시 경험하는 다수의 행위가 끝없이 되풀이 되는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그림 속 풍경이나 사물처럼 다시 회화 자체에 대한 경험으로 “매개”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함의하는 매개된 서사 뿐 아니라 그림 자체가 매개하는 새로운 경험도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박두리의 작업에서는, 회화의 대상이 매개하는 수수께끼 같이 중첩된 서사와 동시에 회화 자체가 전시라는 상황에서 주체의 내면에 작동시키는 기억과의 매개 또한 중요한 맥락을 구축한다.